C.C.C.와 민족복음화운동

$13.61
SKU
9788938901644
+ Wish
[Free shipping over $100]

Standard Shipping estimated by Fri 05/17 - Thu 05/23 (주문일로부 10-14 영업일)

Express Shipping estimated by Tue 05/14 - Thu 05/16 (주문일로부 7-9 영업일)

* 안내되는 배송 완료 예상일은 유통사/배송사의 상황에 따라 예고 없이 변동될 수 있습니다.
Publication Date 2005/05/14
Pages/Weight/Size 153*224*35mm
ISBN 9788938901644
Categories 종교 > 기독교(개신교)
Description
어머니처럼 하나밖에 없는 내 조국. 어디를 찔러도 내 몸같이 아픈 내 조국. 이 민족 마음마다, 가정마다, 교회마다, 사회의 구석구성, 금수강산 자연 환경에도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시고 듯이 하늘에서처럼 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이 땅에 태어나는 어린이마다 어머니의 신앙의 탯줄, 기도의 젖줄, 말씀의 핏줄에서 자라게 하시고 집집마다 이 집의 주인은 예수님이라고 고백하게 하시고, 기업주들은 이 회사의 사장은 예수님이고 나는 관리인이라고 고백하는 민족, 두메마을 우물가의 여인들의 입에서도, 공장의 직공들, 바다의 선원들의 입에서도 찬송이 터져 나오게 하시고, 각급 학교 교실에서 성경이 필수 과목처럼 배워지고 국회나 각의가 모일 대도주의 뜻이 먼저 물어지게 하시고, 국제시장에서 한국제 물건들은 한국인의 신앙과 양심이 으레 보증 수표처럼 믿어지는 민족,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삼으며 신구약 성경을 신앙과 행위의 표준으로 삼는 민족, 민족의식과 예수의식이 하나 된 지상 최초의 민족, 그리하여 수십만의 젊은이들이 예수의 꿈을 꾸고 인류 구원의 환상을 보며 한손에는 복음을 다른 한 손에는 사랑을 들고 지구촌 구석구석을 누비는 거룩한 민족이 되게 하옵소서.

<민족 복음화의 환상과 기도>
Contents
1. 사랑의 기적으로 세계의 신화를

너와 나의 미래상을 생각해 보자
하나님의 주권 앞에 머리 숙이자
먼저 하나님을 바라보자
하나님의 기회를 주소서
사랑의 기적으로 세계의 신화를
민족 복음화를 위한 환상과 기도

2. 민족 복음화와 세계 선교의 비전

민족의 예수 혁명론
민족 복음화의 선언
축복받는 민족
민족 축복의 성경적 원천
엑스플로 '74 개회사
민족 복음화의 비전
민족 복음화의 원동력인 청소년
민족의 토양 속에 묻힌 한 밀알의 꿈
비전없는 민족은 망하낟
통회하고 자복하여 이 민족을 구하자
민족의 진로와 방향
민족을 위한 기도
한국의 완전 기독화 운동
민족사의 강은 어디로 흐를 것인가?
생명의 강이 민족사를 가로질러 흐르고 있다
민족 복음화와 세계 선교의 비전

3. 예수 의식과 민족 의식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삼는 나라
내 조국
예수 의식과 민족 이식
국가기도의 날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
민족의 부흥과 남북통일의 환상!
21세기 기독교의 강은 어디로 흘러야 하는가
평화톨일을 위한 한국 교회 특별연합예배에 초대합니다
국토 통일 이전에 사랑의 통일을!
국회의원과 종교
나와 8.15
허무냐 신이냐

4. 민족복음화운동의 전략노트

순론노트

5. 도시의 완전 복음화 비전

하나님 나라
교회사에 나타난 성시화운동의 사례
민족 복음화의 기도와 전략
춘천 성시화운동

6. 민족 복음화 21세기 비전

한국 기독교21세기 운동 비전과 계쇡
KOREA AD 2000 VISION AND PLAN

7. C.C.C 민족복음화운동 연표
Author
김준곤
유성 김준곤 목사는 1925년 전남 신안에서 출생했다. 어린 시절 먼 친척뻘 되는 낙도의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에게 첫 복음을 들었다. 만주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나 봉천신학교에 입학을 했으나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어 끌려가다가 일본군의 감시를 피해 극적인 탈출을 시도해 만주에 있는 김인석 목사(성결교 총회장 역임) 집에 피신해 있으면서 김 목사가 소장한 2,000여 권의 신학, 철학, 문학서 등을 읽고 영성과 지성의 깊이를 경험했다. 해방 후 조선신학교에서 학업을 계속하다가 자유주의신학사건으로 51인 학생들과 장로회신학교를 제1회로 졸업했다. 1950년 10월 공산좌익에 의해 부친히 학살을 당하고, 아내(인정진 사모)가 순교를 했다. 김준곤 목사도 거반 죽음의 상태에서 국군에 의해 기적적으로 구출됐다. 김 목사는 부친과 아내를 죽인 공산좌익들을 예수 사랑으로 용서하는 탄원서를 올렸다.

광주숭일중고등학교 교목, 교장을 거쳐 미국 풀러신학교 유학 중 국제CCC 설립자 빌 브라잇 박사를 만나 한국CCC 사역을 제안받고 1958년 한국대학생선교회를 창설했다. 그때부터 소천 때까지 매일 아침을 금식하면서 민족복음화와 통일 한국을 위해 기독했다. 김준곤 목사는 1962년 대학생 선교를 기반으로 민족복음화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심하고, 1965년 2월 국회조찬기도회 창설, 1996년 3월 8일 대통령조찬기도회를 만들어 정, 관, 재계, 주한 외교사절 복음화에 나섰고, 민족복음화운동의 제3의 집단으로서의 나사렛형제들 창설(1968년 8월), 전군신자화 운동(1969년), 민족복음화운동 선언(1970년 12월 31일 밤 0시), 민족복음화요원 1만명 강습회(1971년 8월 대전충무 체육관), 엑스플로 '74대회(1974년 8월13일~18일, 32만 3419명 전도훈련), 59,000 자연부락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랑방 운동 등 만족복음화 운동을 주도했다. 1980년 8월에는 세계복음화대성회를 개최하여 10만 선교사 파송을 선언했다. 또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1979년 10월 부터 1981년 9월까지 2년간 『예수칼럼』을 매일 연재하면서 파스칼의 『팡세』에 필적할 만한 글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문서선교의 획기적인 장을 열었다.

이후 '84 세계기도대성회, 엑스플로 '85를 개최했으며, 1990년 7월과 8월 필리핀에 3,000명의 대학생을 단기선교사로 파송하여 한국교회 단기선교사 시대를 열었다. 김준곤 목사는 또한 1995년 5월 세계선교대회(GCOWE Ⅱ)를 개최하여 10/40 윈도우 지역의 미전도종족 선교 전략을 제시했다. 김 목사는 그 기간 중 10만 대학생통일봉사단 발대식을 갖고 통일한국의 비전을 제시했다. 이후 기독교민족화합운동본부 상임대표, 2002 월드컵기독시민운동협의회 대표회장, 사랑의 다리운동,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 북한 43,000마을과 영친운동,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공동대표, 북한사랑의옷보내기운동, 북한젖염소보내기운동 등을 전개하며 우리 사회의 어려운 이웃돕기와 북한 동포돕기를 전개했다. 김준곤 목사는 그가 제창한 '한 손에는 복음을, 한 손에는 사랑을'이라는 쌍손선교를 몸소 실천했다. 김준곤 목사는 마지막까지 한국대학생선교회 이사장 및 총재, 성시화운동총재,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 공동대표로 섬기다가 2009년 2월 29일 "민족의 가슴마다 피 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는 그의 한맺인 기도와 꿈을 우리에게 남기고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김준곤 목사는 조선대 문학과, 장로회신학교, 미국풀러신학교에서 수학했으며, 국립전북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 세종대학교에서 명예교육학박사, 명지대학교에서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2년에는 민족화합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저서로는 『영원한 첫사랑과 생명언어』, 『리바이벌』, 『딸의 죽음 그 존재의 제로점에서』, 『예수칼럼』 등 다수가 있다.
유성 김준곤 목사는 1925년 전남 신안에서 출생했다. 어린 시절 먼 친척뻘 되는 낙도의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에게 첫 복음을 들었다. 만주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나 봉천신학교에 입학을 했으나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어 끌려가다가 일본군의 감시를 피해 극적인 탈출을 시도해 만주에 있는 김인석 목사(성결교 총회장 역임) 집에 피신해 있으면서 김 목사가 소장한 2,000여 권의 신학, 철학, 문학서 등을 읽고 영성과 지성의 깊이를 경험했다. 해방 후 조선신학교에서 학업을 계속하다가 자유주의신학사건으로 51인 학생들과 장로회신학교를 제1회로 졸업했다. 1950년 10월 공산좌익에 의해 부친히 학살을 당하고, 아내(인정진 사모)가 순교를 했다. 김준곤 목사도 거반 죽음의 상태에서 국군에 의해 기적적으로 구출됐다. 김 목사는 부친과 아내를 죽인 공산좌익들을 예수 사랑으로 용서하는 탄원서를 올렸다.

광주숭일중고등학교 교목, 교장을 거쳐 미국 풀러신학교 유학 중 국제CCC 설립자 빌 브라잇 박사를 만나 한국CCC 사역을 제안받고 1958년 한국대학생선교회를 창설했다. 그때부터 소천 때까지 매일 아침을 금식하면서 민족복음화와 통일 한국을 위해 기독했다. 김준곤 목사는 1962년 대학생 선교를 기반으로 민족복음화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심하고, 1965년 2월 국회조찬기도회 창설, 1996년 3월 8일 대통령조찬기도회를 만들어 정, 관, 재계, 주한 외교사절 복음화에 나섰고, 민족복음화운동의 제3의 집단으로서의 나사렛형제들 창설(1968년 8월), 전군신자화 운동(1969년), 민족복음화운동 선언(1970년 12월 31일 밤 0시), 민족복음화요원 1만명 강습회(1971년 8월 대전충무 체육관), 엑스플로 '74대회(1974년 8월13일~18일, 32만 3419명 전도훈련), 59,000 자연부락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랑방 운동 등 만족복음화 운동을 주도했다. 1980년 8월에는 세계복음화대성회를 개최하여 10만 선교사 파송을 선언했다. 또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1979년 10월 부터 1981년 9월까지 2년간 『예수칼럼』을 매일 연재하면서 파스칼의 『팡세』에 필적할 만한 글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문서선교의 획기적인 장을 열었다.

이후 '84 세계기도대성회, 엑스플로 '85를 개최했으며, 1990년 7월과 8월 필리핀에 3,000명의 대학생을 단기선교사로 파송하여 한국교회 단기선교사 시대를 열었다. 김준곤 목사는 또한 1995년 5월 세계선교대회(GCOWE Ⅱ)를 개최하여 10/40 윈도우 지역의 미전도종족 선교 전략을 제시했다. 김 목사는 그 기간 중 10만 대학생통일봉사단 발대식을 갖고 통일한국의 비전을 제시했다. 이후 기독교민족화합운동본부 상임대표, 2002 월드컵기독시민운동협의회 대표회장, 사랑의 다리운동,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 북한 43,000마을과 영친운동,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공동대표, 북한사랑의옷보내기운동, 북한젖염소보내기운동 등을 전개하며 우리 사회의 어려운 이웃돕기와 북한 동포돕기를 전개했다. 김준곤 목사는 그가 제창한 '한 손에는 복음을, 한 손에는 사랑을'이라는 쌍손선교를 몸소 실천했다. 김준곤 목사는 마지막까지 한국대학생선교회 이사장 및 총재, 성시화운동총재,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 공동대표로 섬기다가 2009년 2월 29일 "민족의 가슴마다 피 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는 그의 한맺인 기도와 꿈을 우리에게 남기고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김준곤 목사는 조선대 문학과, 장로회신학교, 미국풀러신학교에서 수학했으며, 국립전북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 세종대학교에서 명예교육학박사, 명지대학교에서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2년에는 민족화합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저서로는 『영원한 첫사랑과 생명언어』, 『리바이벌』, 『딸의 죽음 그 존재의 제로점에서』, 『예수칼럼』 등 다수가 있다.